아일랜드 독립과 내전의 역사, 영국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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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경설명

아일랜드 독립과 내전의 역사, 영국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 보아요

by 토깽이은 2023.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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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가 지난번 포스팅에서 스코틀랜드가 영국과 통합되고, 분리 독립 주장 등에 포스팅을 했습니다.

아일랜드 국기

오늘은 영국(잉글랜드)에서 독립하고, 여러 가지 사건으로 내전을 겪은 역사가 있는 영국 옆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Ireland)가 독립한 과정과 그 후 내전 상황 등에 대한 포스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의 아일랜드 통치

아일랜드 위치

위 지도에서 보이는 것 처럼 아일랜드는 영국과 매우 가까운 위치의 섬나라입니다.

그래서 영국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부터 아일랜드를 지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고,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합니다.

아일랜드 가톨릭의 상징 성 패드릭 대성당
세인트 패드릭 대성당(아일랜드 가톨릭 상징)

그러던 중 16세기말 엘리자베스 1 세 시절에 아일랜드로 개신교 신도들을 집단 이주시킵니다.

그 이유는 아일랜드는 가톨릭 신자가 많은 국가인데, 영국 성공회 신자들을 이주시켜 아일랜드를 영국이 통치하기 편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아일랜드 북쪽에 이주하여 성공회 신자들이 사실상 이곳을 점령해 버립니다.

그리고 1801년에 아일랜드는 공식적으로 영국으로 합병되었습니다.

그 후 아일랜드 북부의 성공회 귀족들은 매우 부유한 삶을 사는 반면,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은 온갖 박해를 당하고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 동부로 이민을 많이 갔는데, 아일랜드 사람들은 음악 등 미국 문화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아일랜드의 독립운동 - IRA 등장

IRA
아일랜드 독립군 IRA

1차 대전이 끝난 이후 1919년 아일랜드에는 독립군 조직인 IRA가 생겨났습니다. 

IRA는 영국으로부터 군사적, 정치적 개입 없이 아일랜드 자체의 독립적인 자치권을 주장하는 아일랜드 공화군입니다.

1919년부터 2년 반 동안 아일랜드는 영국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펼쳤습니다. 

유난히 영국으로부터 핍박을 많이 당한 아일랜드인들의 IRA는 게릴라전 형태로 매우 공격적이고 거세게 독립 전쟁을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마이클 콜린스'라는 재무부 장관은 IRA에 군자금과 무기를 지원해 주는 데 성공하였으며, 뛰어난 리더십으로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고 합니다.

또한 아일랜드의 여성 단체와 유소년 단체 역시 독립운동에 막대한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었습니다.

영국군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IRA를 포함한 아일랜드 사람들 약 1400여 명을 사살하는 등 아일랜드를 제압했지만, 1921년에 아일랜드와 휴전 협정을 맺습니다. 

그리고 아일랜드는 영국령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로 인정받았지만,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은 분단된 형태의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이 독립 반댈세... 북아일랜드 성공회 신자들

북아일랜드 성공회
북아일랜드 성공회

아일랜드의 북쪽에 있는 성공회 신자들은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미 16세기말에 영국에서 이주해 온 성공회 교도이며,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립을 하게 되면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부와 권력이 무너지고, 반대로 가톨릭 신자들에게 억압을 받게 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결과 북부 얼스터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에 반대라는 얼스터 민병대(UVF)가 등장하게 됩니다.

북아일랜드 민병대
이미지 출처: BBC 뉴스

이렇게 북아일랜드의 완벽한 독립을 주장하는 IRA와 독립을 반대하는 UVF는 서로 테러와 폭력 사태를 일으키며, 유혈 사태를 겪습니다.

 

끊임없는 내전의 20세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아일랜드는 1921년 분리 독립을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독립이 아닌, 북부 지역은 영국령으로 하고는 분단국가의 형식으로 독립됩니다. 이 부분은 IRA 내에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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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공화군
아일랜드 공화군

온건주의 파는 일부 북부 지역이 영국령으로 남더라도 아일랜드가 독립을 이룬 것에 만족하자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강경주의 파는 무조건 북아일랜드 지역 역시 아일랜드 자치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렇게 IRA가 분단 조치를 수긍한 것을 국가적 치욕이라고 생각하고,  IRA 내 강경파 독립군과 임시 정부군 사이에도 내전 1년 동안이나 지속됩니다. 

 

1969년 IRA는 또 다른 형태로 분리됩니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정식 부대인 IRA와 북아일랜드에 있는 가톨릭 신자들을 해방시킬 때까지 투쟁한다는 PIRA로 나뉘어 서로 충돌 와 폭력 사태를 겪습니다.

북아일랜드 민병대
이미지 출처: belfasttelegraph

그리고 북아일랜드는 다시 UVF가 부활하여 UDA가 됩니다. 그리고  PIRA와 서로 대립하고 충돌합니다. 

그리고 IRA와 UVF는 1969년부터 1998년까지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키는 테러 형태의 내전을 지속합니다.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peace wall)

그 둘의 싸움은 너무 격렬해져서 영국군이 배치되고, 성공회 교도와 가톨릭교도 사이의 접촉을 막아야 한다며 'Peace Wall'이 세워집니다. 

블러디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

이러한 칼들은 1972년 블러디 선데이라는 엄청난 비극적인 사태를 불러일으킵니다. 

영국군은 가톨릭 신자들을 아무 이유 없이 무장 테러 세력으로 몰아세워 심문하고 감금하는 사태가 생깁니다. 

이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은 시위를 하게 되고, 영국 공수 부대가 이 시위에 대해 발포를 하게 되어 수십 명이 죽고 부상자가 발생합니다.

북아일랜드 폭탄테러 사진
북아일랜드 폭탄테러

그 후에도 크고 작은 폭탄 테러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하며, 유혈사태가 이어집니다.

IRA는 1997년 무력 사용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2005년 영국 정부와 공실 타결을 합니다.

이렇게 아일랜드는 20세기 내내 내전을 겪으며 혼란을 겪었습니다. 

마무리

독립 투쟁과 내전의 아픔을 겪은 아일랜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영국에 대해서는 대항해 시대와 대영 제국 등 떠오르는 역사가 있지만, 사실 아일랜드 하면 스칼렛 요한슨이 출현하는 SF 영화 외에 그다지 알고 있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 넷플릭스에서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 및 내전에 대한 시리즈를 알게 되면서 관심이 생겼고, 포스팅을 위해 조사하다 보면서 거의 한 세기를 내전으로 혼란을 겪은 역사에 놀랍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아일랜드의 독립과 내전에 대한 포스팅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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