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와 영국의 관계와 역사, 분리 독립에 대해 알아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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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경설명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관계와 역사, 분리 독립에 대해 알아 보아요.

by 토깽이은 2023.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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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스코틀랜드와 영국(잉글랜드)의 관계에 대한 포스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지금 영국(잉글랜드) 안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 한 나라로 묶여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국기

그러나 잉글랜드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은 독특한 형태로, 축구팀을 이 스코틀랜드 팀으로 따로 출전하고, 스코틀랜드어가 따로 있는 등 잉글랜드와 다른 나라인 듯 한 나라입니다.  

과연 스코틀랜드는 어떠한 과정으로 영국과 한 나라로 통합되었는지와 분리 독립에 대한 주장 등에 대한 포스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군연합 - 두 나라의 통합 시초

스코틀랜드 배경
이미지 출처: 강사 신문

원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서로 경쟁적인 관계였습니다.

당연히 잉글랜드의 힘이 우세하였고,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합병하려고 하는 시도는 있었지만,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힘겹게 버티면서 나라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601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후세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혈통 계승을 중시하던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 왕조의 제임스 6세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후손인 것을 근거로 그를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세우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동군연합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 잉글랜드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면서 자코바이트라는 스코틀랜드 반군 세력이 등장하게 됩니다.

결정적 사건 - 다리엔 계획 실패

다리엔 정글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다리엔 정글)

17세기 후반 스코틀랜드는 무려 7년 동안이나 엄청난 기근을 겪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를 비롯한 다른 서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를 넓혀가면서 세력을 강화하는데, 스코틀랜드는 마땅히 차지할 지역이 없어지면서 나라를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위태로움과 불안함에 휩싸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스코틀랜드는 파나마 남부의 다리엔이라는 지역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 다리엔 지역은 대서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무역 요충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다리엔 지역)

그래서 많은 귀족들의 돈을 투자 받아 1698년에 다리엔 지역을 정복하러 갑니다. 

그러나 이 곳은 열대 우림과 늪지대 등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오지입니다.

따라서 당시에 이곳은 이미 다른 서유럽 국가들이 정복을 하려다가 실패한 곳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다리엔 지역에 자국민들을 보내지만 풍토병 등으로 사망하고, 스페인 함대의 공격을 받는 등 다리엔 계획 실패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스코틀랜드는 엄청난 재정적 파산을 맞게 되고,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에게 빚을 청산해 줄 테니 합병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당시 잉글랜드는 경쟁 관계였던 프랑스가 스코틀랜드를 차지하게 될까 봐 성급하게 손을 먼저 내밀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1706년 스코틀랜드는 정식적으로 잉글랜드로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가 됩니다. 

 

자코바이트 독립 운동

자코바이트 하일랜드 전통 의상
출처: 한국일보(하일랜드인 전통 의상)

스코틀랜드는 엄청난 빚 때문에 잉글랜드에게 주권을 넘겨준 것에 대해 사람들은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특히 하이랜드라고 불리는 북부 지역 사람들이 불만이 심했다고 합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가톨릭 신자 비중이 높았고, 영어가 아닌 스코틀랜드어가 따로 사용되는 등 잉글랜드와는 정체성이 다른데, 돈 때문에 나라가 팔려간 것에 대해 분노가 컸다고 합니다.

따라서 1688년부터 1746년까지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인 자코바이트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혜택 많은 대영제국

출처: 투데이 코리아

그러나 18세기말에서 19세기가 되면서 스코틀랜드 내부의 독립 의지는 약화됩니다.

그 이유는 당시 대영제국의 엄청난 영토 확장으로 스코틀랜드 사람들 역시 대영제국의 일원으로 다양한 일자리를 얻거나 해외에 나갈 수 있는 등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스코틀랜드 북부 사람들은 대영제국의 군인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남부 사람들은 동인도 회사에 취직하여 해외로 나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대영제국의 긍정적인 측면을 바탕으로 똑똑했던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경제, 과학, 예술 등의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 예로 증기기관 개량으로 산업 혁명의 밑바탕을 만든 제임스 와트가 있습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을 펼친 에덤 스미스 역시 스코틀랜드 출신입니다.

이렇게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빅토리아 시대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며 스코틀랜드식 계몽주의를 펼칩니다.

분리 독립 이슈 

분리 독립을 외치는 스코틀랜드 사람들
분리독립을 외치는 스코틀랜드 사람들(동아일보 출처)

그러나 20세기 후반 영국은 가지고 있던 많은 식민지를 잃게 되면서 대영제국의 명성도 차츰 잃게 됩니다.

특히 1945년 영국은 33억 파운드 이상의 부채를 지게 되면서, 나라 제정 상황도 악화됩니다.

그리고 이때 민족주의 열풍이 불었으며, 1차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스코틀랜드 역시 잠시 잃어버렸던 독립 의지가 살아나게 됩니다.

또한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는 영국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 있는 산업 시설들을 거의 파괴시키면서, 스코틀랜드는 엄청난 경제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렇게 다시 영국에 불만이 커지면서, SNP 당을 중심으로 분리 독립에 대한 열망과 목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스코틀랜드 자치권 인정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한국 일보 출처)

1973년 스코틀랜드는 북해 유전 시추에 성공합니다.

당시 전 세계는 오일 파동을 겪으며 에너지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코틀랜드가 자신들의 영토에서 나오는 유전을 영국 전체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 높아졌으며, 분리 독립에 대한 여론이 거세졌습니다.

그러자 영국 의회에서는 1997년 스코틀랜드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기로 합니다.

외교, 국방, 화폐 등 굵직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스코틀랜드는 입법권을 가지게 됩니다.

 

분리 독립 투표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시위
스코틀랜드 독립 시위(노컷뉴스 이미지 출처)

그러나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자치권 인정을 넘어 잉글랜드와 완전히 떨어진 독립된 나라를 꿈꿉니다.

2014년 스코틀랜드는 분리 독립에 대한 찬성, 반대투표를 진행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독립 찬성 보다 잉글랜드 잔류를 원하는 표가 약 10% 더 많아, 독립은 무산됩니다.

ㅊ출처: 동아일보

그리고 2016년 영국이 유럽 연합을 탈퇴한다는 '브렉시트'에 대해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다시 분리 독립 투표가 실시되었는데, 결과는 약 3% 차이로 잉글랜드에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영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분리 독립 찬성 입장이 더 증가한 추세하고 합니다. 이에 대해 영국 법원에서는 스코틀랜드 국민들이 독립을 투표하고, 이것을 입법할 권리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마무리

대영제국
출처: 투데이 코리아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합병과 이에 따른 분리 독립 주장에 대한 역사가 300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많은 이슈가 있었지만, 결국 사람들은 돈과 이익에 따라 마음이 변하는 것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대영제국이 잘 나갈 때에는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주장이 잠잠했는데, 영국의 경제 상황이 안 좋을 때 분리 독립 목소리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누가 나쁘다', '누가 착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고,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에 대해서는 사람들 마다 의견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누가 옳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며, 각자의 입장과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이슈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향후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편입된 이유와 역사, 분리 독립 이슈 등에 대한 포스팅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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